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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장례에서 축문을 읽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by 시옹시 2025. 5. 22.

현대 장례에서 축문을 읽지 않는 이유

 

🕰️ 1. 전통에서 현대까지 – 축문이 점차 사라지게 된 시대적 흐름

 

과거에는 장례를 치르며 축문을 읽는 것이 당연한 절차처럼 여겨졌습니다.
고인을 위한 마지막 인사이자, 유족의 감정을 담아내는 공식적인 언어였기 때문입니다.
특히 유교적 전통에 기반한 장례문화 속에서 축문은 필수 의식이었으며,
고인의 위패나 영좌 앞에서 낭독되는 그 글은 죽음을 인지하고 작별을 고하는 가장 정중한 방식이었습니다.

그러나 시대가 바뀌면서 이러한 전통은 점점 생략되거나 간소화되기 시작했습니다.


그 중심엔 사회 전반의 생활 패턴 변화와 가치관의 다변화가 있습니다.
먼저, 과거엔 장례가 대부분 집에서 치러졌지만,
현대에는 병원 장례식장, 전문 장례식장 등 시간과 공간이 제한된 상업적 구조에서 진행됩니다.
이로 인해 정해진 시간 안에 모든 절차를 ‘효율적’으로 마쳐야 한다는 분위기가 강해졌고,
자연스럽게 축문 같은 의례는 생략 대상으로 밀려나게 된 것이죠.

또한 오늘날의 장례는 이전처럼 **‘의례 중심’보다는 ‘감정 중심’**으로 변화했습니다.


유교의 틀 안에서 정형화된 방식보다는,
고인을 추억하고 유족의 감정을 위로하는 방향으로 흐르면서
‘틀에 맞춘 한문 낭독’보다는 진심 어린 편지나 영상, 음악 등 다양한 방식의 작별이 더 널리 받아들여지게 되었습니다.

축문이 축소되거나 생략되는 또 다른 이유는
가족 구성과 장례 주체의 변화입니다.
핵가족화, 1인 가구의 증가로 인해
전통 예법에 익숙한 어른 세대가 부재하거나,
장례를 주관하는 자녀들이 축문의 존재 자체를 모르는 경우도 많습니다.

결국 현대 장례에서는 시간적 여유, 공간적 여건, 문화적 흐름 모두가
축문을 중심에서 밀어내는 방향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죠.


⏳ 2. 실무 현장에서 본 축문 생략 – 유족도, 지도사도 말하지 않는 이유

장례지도사로 현장에 있다 보면 축문을 준비하거나 요청하는 경우가 정말 드뭅니다.
입관 시간은 빠듯하고, 유족은 감정적으로 힘든 상태에서
“축문을 읽으시겠습니까?”라고 물어보는 것조차 부담스럽게 느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입관부터 성복, 발인까지의 흐름이 짧아진 현대 장례에서
의식의 밀도보다 속도가 우선되는 구조
자연스럽게 전통 의례의 생략으로 이어집니다.

특히 고인이 병원에서 돌아가신 경우,
의료진의 사망 선고 직후 빠르게 장례 절차가 진행되다 보니
고인을 떠나보낼 준비조차 마치기 전에 입관이 이루어지는 상황도 많습니다.

 

이럴 때 장례지도사가
“축문을 낭독하시겠습니까?”, “고유문이나 제문 준비하셨나요?”라고 물으면
유족 대부분은 “그런 건 안 해도 되죠?”, “그게 꼭 필요한가요?”라고 되묻곤 합니다.
이는 정보 부족이라기보다는
**‘의례보다는 감정’, ‘형식보다는 실용’**을 우선시하는 사회적 분위기 때문이에요.

또한 실무 현장에서는 한문에 대한 거부감도 적지 않습니다.
전통 축문은 대부분 한문체로 구성되어 있어,
내용을 이해하기도 어렵고,
읽는 데 부담이 크며,
감정이 격한 상태에서 억지로 낭독하는 것은 오히려 유족에게 더 힘든 상황이 될 수도 있습니다.

게다가 장례식장의 물리적 여건도 축문을 어렵게 만듭니다.
입관실이 작고, 낭독을 위한 마이크 세팅이나 차분한 분위기를 만들 시간도 부족한 경우가 많습니다.
장례가 동시에 여러 건 진행되고 있다면
낭독하는 목소리가 다른 빈소에 들릴까 봐 꺼리는 경우도 생깁니다.

결국 유족도, 실무자도, 축문이라는 전통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꺼내지 않는 이유는
현장 전체가 그 전통을 감당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 3. ‘꼭 안 읽어도 되나요?’ – 전통과 감정 사이의 균형 잡기

“축문은 안 읽어도 되나요?”
이 질문은 장례식장에서 가장 자주 들리는 말 중 하나입니다.
그리고 그 말 속에는 ‘이걸 빼도 되는지, 혹시 무례한 건 아닌지’ 하는 유족의 걱정이 담겨 있습니다.

현대 장례에서는 축문을 생략하는 일이 많지만,
그렇다고 해서 ‘축문이 쓸모없어진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그 형식과 언어는 바뀌었지만, 역할은 여전히 살아 있습니다.

과거 축문이 고인을 보내는 정중한 의례였다면,
지금은 편지, 음성 메시지, 손편지, 편안한 작별 인사가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습니다.
한 문장이라도 진심을 담아 고인 앞에서 전한다면,
그것은 충분히 축문의 의미를 이어가는 행위가 될 수 있어요.

장례지도사로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읽을 것인가 말 것인가’를 선택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방식으로든 마지막 인사를 남길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 “한문이 어렵다면 간단한 우리말 인사말로 대신하셔도 좋습니다.”
  • “마음이 힘드시다면, 저희가 대독해드릴 수도 있습니다.”
  • “짧게라도 편지처럼 마음을 전해보시겠어요?”

이런 식으로 접근하면, 유족은
‘의례를 지켜야 한다’는 부담이 아니라
‘마음을 전할 수 있다’는 위안으로 받아들이게 됩니다.

또한 장례식장에서는
간단한 축문 예시나 포맷을 미리 안내해주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이것은 유족에게 부담을 주기보다
‘선택할 수 있는 하나의 방식’으로 남겨주는 효과를 줍니다.

결국 축문은 읽느냐 마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어떤 방식으로 마지막 인사를 전달할 수 있느냐의 문제입니다.
현대 장례에서 축문이 사라진 것 같아도,
그 의미와 감정은 여전히 유족의 마음에 살아 있고,
그것을 잇는 다리가 바로 장례지도사의 말 한마디, 제안 하나일 수 있습니다.